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/외교 (문단 편집) === 유목민 === 오구즈 튀르크 이전에도 동로마 제국은 초원의 유목민과 종종 충돌하였는데 [[훈족]]의 [[아틸라]]는 [[447년]]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한 바 있었고 그 이후 [[아바르]]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. 아바르족은 복속된 슬라브 부족과 함께 동로마 제국을 공격했으며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에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. 이후 불가르족이 제국을 침입했는데 [[다뉴브 강]] 유역에 정착한 불가르족은 볼가강에 정착한 불가르와 달리 현지 슬라브족에 동화되어 [[불가리아 제1제국]]을 성립시키고 언어도 [[튀르크어족|튀르크계 언어]]에서 [[슬라브어파|슬라브계 언어]]로 바뀌었다. 이들은 8~9세기에 동로마 제국을 크게 압도할 뻔했다가 동로마의 반격으로 멸망한다. [[페체네그]], [[마자르족]]과도 충돌하였는데 페체네그는 약체화된 뒤 [[레부니온 전투]], [[베로이아 전투]]로 소멸하였고 마자르는 페체네그의 침공으로 밀려나 판노니아 평원에 정착하고 헝가리를 세웠는데 이들은 불가리아와 동로마 뿐만이 아니라 서유럽을 약탈하였고 [[레히펠트 전투]]로 그 기세가 꺾이자 서방교회에 귀의하였다.[* 사실 마자르는 그 이전에는 동방교회의 영향이 더 컸지만 레히펠트 전투의 영향으로 서방교회에 귀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.] 그러나 헝가리가 서방교회에 귀의 했어도 동로마의 영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여서 [[성 이슈트반 왕관]] 중 링 부분은 동로마 황제 [[미하일 7세]]가 사위인 헝가리 왕 [[게저 1세]]에게 선물한 것이고 콤니노스 왕조 중흥기에는 [[하람 전투]], [[시르미온 전투]]로 인해 속국신세 였으나 마누일 1세 사후 속국신세에서 벗어났다. [[키예프 루스]]의 원정으로 [[하자르]]가 약화되어 세력이 강성해진 [[쿠만]]과 가끔 충돌하였으나 쿠만은 키예프 루스와 자주 충돌하여서 인지 동로마 제국과는 많이 싸우지는 않았다. 그 뒤 [[몽골 제국]]이 유라시아 상당부분을 정복하고 동로마와 접촉했다. 당시 재건된 동로마는 미하일 8세~안드로니코스 2세 시대까지 사라센이나 튀르크를 견제하기 위해 몽골(+ [[일 칸국]])과 우호적인 동맹 관계를 유지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